그랜드 서클 여행의 시작: 라스베이거스 렌터카 픽업까지

12일간 렌터카로 1,924마일(약 3,096km)을 달린 미국 서부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여행. 

그 시작을 준비 과정부터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 도착해 첫 목적지로 출발하기까지, 하나로 묶어 정리해본다.

여행을 준비하며

미국 서부의 대표 국립공원과 협곡을 원형 루트로 연결하는 그랜드 서클은, 자연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로드트립 코스다.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서부의 웬만한 국립공원을 다 둘러보는 일정을 짰다.

원래 그랜드 서클 코스엔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이 포함되지 않는다. 

도로를 달리는 중간에 잠시 휴식

라스베이거스에서 다소 먼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치스의 대표 명물인 델리키트 아치(Delicate Arch)를 꼭 보고 싶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소 멀더라도 모압(Moab) 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지나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다.

귀국길엔 스톱오버를 이용해 샌프란시스코에서 2일을 더 머물기로 했다. 

금문교, 소살리토, 피셔먼스 워프 정도는 볼 수 있을 듯했다.

가장 큰 고민은 항공권이었다. 

타고갈 비행기가 계류된 광경

스카이스캐너, 구글 플라이트, 엑스페디아, 카약 을 비롯해 국내 여러 사이트를 뒤졌다. 

대한항공은 라스베이거스 직항이 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 스톱오버가 필요해서 유나이티드 항공을 택했다. 

6개월 전 미리 예약한 왕복 항공료는 80만 원 초반대였다. 

유나이티드는 서비스나 지연이 잦다는 평이 있었지만,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 감수하기로 했다.

인천 출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상공

체크인할 때 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 환승 시간이 2시간 30분밖에 안 돼서 걱정이 앞섰다. 

앞자리를 요청했더니 다행히 이코노미 플러스로 업그레이드받을 수 있었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했고, 승무원들은 화려한 서비스보다는 담백하고 노련한 태도로 일관했는데 오히려 그 편이 편안했다.

걱정했던 아내의 컨디션도 다행히 큰 무리 없이 잘 버텨줬다.

10시간 30분을 날아 오전 11시,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샌프란시스코 상공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오후 5시쯤 출발했으니 시차 계산이 벌써부터 복잡했다.


샌프란시스코 환승, 긴박했던 2시간 30분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와 금문교의 풍경은 근사했지만, 감상할 여유는 길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전경


입국장은 생각보다 좁고 다소 낙후된 느낌이었는데, 점심시간대였음에도 심사 부스 직원이 적어 대기가 길어질 조짐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한 직후엔 대기자가 많지 않았다. 

안심하고 있는데 10분쯤 지나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조금만 늦었어도 상당히 지체될 뻔했다.

심사관은 젊고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5백만 달러가 넘는 현금을 가져온 거 아니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려 매번 "Sir"를 붙여가며 정중하게 답했다. 

입국 목적과 체류 기간 정도의 간단한 질문 후 사진과 지문을 등록하고 무사히 통과했다.

세관에서는 음식물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별도 검사를 받아야 했다. 

신고하지 않았으면 그냥 통과됐을 텐데, 걸렸을 때의 벌금이 걱정돼 정직하게 표시한 게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세관원이 또렷한 발음으로 "김치? 김치?"라고 묻더니, 맞다고 하자 의외로 간단하게 통과시켜줬다.

국내선으로 짐을 다시 부치고 나니 이번엔 보안검색이 기다리고 있었다. 

휠체어 이용객의 바퀴까지 분리해 검사하는 걸 보며 상당히 꼼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파 탐지기 안에서 양팔을 든 채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다행히 출발 30분 전에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국심사부터 환승까지 총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 셈이다.

라스베이거스로

좌석 두 개씩 양옆으로 배치된 중형기를 타고 1시간 45분을 날았다. 

승무원은 단 3명, 음료 한 잔 서빙 외엔 특별한 서비스가 없었다. 

창밖으로 하얀 뭉게구름과 끝없는 사막이 펼쳐지는 걸 보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내부

라스베가스라는 이름은 1829년 이 지역을 지나던 스페인 상인들이 붙인 것으로, 스페인어로 "초원"을 뜻한다. 

드물게 물이 풍부했던 지역 특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30년대 대공황 극복을 위한 후버댐 건설로 노동자가 몰려들며 인구가 급증했고, 이 시기 네바다주가 도박을 합법화하면서 지금의 카지노 도시로 자리 잡았다.

오후 3시 30분,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안에 카지노 기계가 놓여 있는 걸 보고 "도박의 도시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곳에서 묵지 않고 곧장 렌터카를 픽업해 첫 목적지인 St. George로 이동해야 했다.

렌터카 픽업, 그리고 예상 밖의 캐딜락

가방을 찾아 렌터카 센터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였다. 

예약해둔 곳은 독일계 렌터카 회사 SIXT였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도를 고려해 BMW 520을 선택하고, 만약을 대비해 보험도 풀 커버리지로 가입해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BMW는 물론 벤츠, 아우디까지 전부 없다고 했다. 

대신 동급으로 캐딜락을 내주겠다고 하고, 추가금을 내면 BMW X3로 업그레이드해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식스트 캐딜락 렌터카


차 키를 받아 들고 가려는데 직원이 뒤늦게 따라와 차 뒷부분에 흠집이 두 군데 있다고 알려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1만 마일 정도만 주행한 신차였고 최첨단 기능도 여럿 갖추고 있었다. 

다만 에어컨 조작이 좀 헷갈렸고, 크루즈 컨트롤은 있었지만 거의 쓰지 않았다.

미국에서 렌터카를 빌리려면 국제운전면허증이 필요한데, 한국 면허증·여권과 함께 제시해야 한다. 

국제운전면허증은 경찰서에서 10분이면 발급받을 수 있고 유효기간은 1년인데, 얇은 종이 소책자 형태라 찢어지기 쉽고 휴대하기 불편했다. 

렌터카 뒷모습


국내 면허증처럼 플라스틱 카드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세인트 조지(St. George)를 향해

인천을 떠난 지 벌써 24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거의 잠을 못 잔 상태로 I-15 고속도로에 올랐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구간은 정체가 꽤 심했지만, 표지판을 따라가니 어렵지 않게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몰몬교 성지인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정체가 풀린 뒤로는 약 2시간 동안 사막과 산악 지대를 달렸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세인트조지를 향해 달리는 중간

붉은 산 중턱을 굽이굽이 도는 도로를 지나자, 전형적인 미국식 단층 목조주택들과 잘 가꿔진 잔디밭, 작은 호수가 있는 동네가 나타났다. 

곳곳에 골프장까지 있어서, 은퇴 후 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드디어 첫 목적지 세인트 조지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은 하루 10달러라 신청하지 않고, 대신 GPS 기반의 맵스미(Maps.me) 앱을 활용했는데 여행 내내 아주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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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뻗어 있는 도로


숙소는 시내 중심가의 컴포트 인(Comfort Inn)이었는데, 바로 옆에 월마트와 코스트코가 있어 물건을 사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리했다.

월마트에서 과일, 생수, 컵라면, 김치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컵라면과 햇반을 먹으니 느끼함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미리 준비해간 유심칩 덕분에 데이터도 잘 터졌고, 호텔 와이파이로 한국 집에 연락도 무사히 마쳤다.

인천을 떠난 지 꼬박 하루 만에, 드디어 침대에 몸을 눕혔다. 

안전하게 달릴 렌터카


세인트 조지는 작은 도시였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활기가 넘쳤다.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으로 향하는 거점 도시답게 이후 일정의 출발점이 되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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