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의 신의 정원에서 호스슈벤드까지
아침 6시 반, 새벽 시차로 살짝 잠이 깼지만 그래도 푹 잔 편이었다.
스크램블에그와 소시지, 빵과 과일로 든든히 아침을 챙기고 7시 20분, Zion National Park을 향해 St. George를 출발했다.
신의 정원, Zion National Park
가까워질수록 주변 산세가 심상치 않게 웅장해졌다.
"신의 정원"이라는 별명이 과연 실감 났다.
방문자 센터 부근을 간단히 둘러본 뒤 곧장 Canyon Overlook Trail을 향해 출발했다.
이 트레일 주차장이 워낙 협소해서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 트레킹 자체를 못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자이언-마운트 카멜 터널
높은 산을 넘는 도로 자체가 장관이었는데, 그 중간에 뚫린 자이언-카멜산 터널을 통과하는 경험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1930년에 완공된 이 터널은 당시 차량 크기에 맞춰 좁게 만들어졌는데, 중간중간 "윈도우"라 불리는 큰 구멍이 뚫려 있어 자이언의 풍경이 마치 영화 예고편처럼 순간순간 스쳐 지나갔다.
원래는 터널 공사 중 나온 토사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뚫은 구멍이라고 한다.
도시가 아닌 지역에 지어진 세계 최장 터널이었다고 하니, 당시로선 상당한 토목 도전이었을 것 같다.
도로 폭이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아서 양방향 통행이 불가능했다.
터널 양쪽에서 안내원이 교통을 통제하며 한쪽 방향씩 차례로 보내주는데, 반대편 차가 지나가는 동안 1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터널 안에서는 정차도, 서행도 허용되지 않아서 우리도 여러 대가 대열을 이뤄 일정한 속도로 통과했다.
확장하면 편리하겠지만, 자연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겨 지금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콜로라도 고원과 Big 5
자이언이 속한 콜로라도 고원은 20억 년에 걸쳐 물과 바람이 빚어낸 지형으로, 그랜드캐년을 포함해 10곳의 국립공원을 품고 있다.
대한민국 면적의 3.3배에 달하는 이 고원은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 개 주에 걸쳐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유타 남부에만 Arches, Capitol Reef, Canyonland, Zion, Bryce Canyon 다섯 곳이 몰려 있어 "Big 5"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1919년 지정된 Zion National Park은 유타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공원 중 하나로, 그랜드캐년의 웅장함과 브라이스 캐니언의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 곳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름은 모르몬교 개척자 아이작이 성경 속 시온 산에서 따온 것으로, "돌아갈 약속의 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수백 미터 높이로 솟은 바위산들 사이 계곡을 내려다보면, 정말 사람이 아닌 신들의 영역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Canyon Overlook Trail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른쪽에 트레일 주차장이 있었는데, 겨우 10대 남짓 세울 수 있는 크기라 걱정했던 대로 자리가 거의 없었다.
다행히 3대 정도 남은 자리에 겨우 주차했다.
200m쯤 위 도로 반대편에도 여분 주차장이 있지만 6대 정도가 전부라, 내려올 때 보니 자리를 못 찾고 그냥 지나치는 차들이 많았다.
트레일 자체는 완만해서 왕복 1시간이면 충분했다.
선인장이 늘어선 길을 지나고 커다란 바위 아래로 몸을 숙이며 지나는 구간도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우리가 굽이굽이 넘어온 도로가 저 멀리 내려다보였고, 해발 2,000m 지점에서 마주한 거대한 수직 절벽과 The Great Arch, 그 너머 자이언 캐니언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험하지 않은 코스인데도 자이언의 정수를 짧은 시간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곳이었다.
버밀리언 클리프 로드를 달리며
자이언 트레킹을 마치고 "리틀 할리우드"라 불리는 영화 촬영지, 캐납을 향해 다시 달렸다.
이번엔 89번 도로 대신 프레도니아 쪽 길을 택했는데, 수십 가구 정도의 이 작은 마을은 사람들이 무엇으로 생계를 잇는지 궁금해질 만큼 조용하고 소박했다.
89A 도로를 타고 Page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보니, 갑자기 시야를 가리던 모든 것이 사라지며 끝없이 펼쳐진 버밀리언 클리프 로드가 나타났다.
미 서부의 광활함을 실감케 하는 규모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이 일대는 나바호 네이션이라 불리는 원주민 자치구역으로, 남한 면적의 70%에 달할 만큼 광대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는 목적은 콜로라도강을 가로지르는 나바호 다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길은 접근이 까다로운 그랜드캐년 노스 림으로도 이어지고, 근처엔 제이콥 호수도 있었다.
나바호 다리
가는 길에 원주민들이 바위를 깎아 만든 옛 거주지에 잠시 멈춰 둘러봤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활했을지 상상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한 시간쯤 더 달려 도착한 나바호 다리에서는, 버밀리언 클리프의 붉은 암벽을 배경으로 콜로라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붉은 사막 고원을 가로지르는 진녹색 강물이 묘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걸어서 건넌 보행자용 다리는 1929년 완공됐고, 그 옆에 1995년 지어진 쌍둥이 다리는 늘어난 차량 통행을 감당하기 위한 자동차 전용 다리였다.
다리 입구엔 원주민들이 좌판을 펼쳐놓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강줄기는 새삼 경이로웠고, 강가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초록빛 풀과 나무도 눈에 띄었다.
이 그랜드 서클 지역 대부분이 나바호 보호구역에 속한다는 안내판도 볼 수 있었다.
다리 아래로는 보트를 저어가는 사람들이 까마득히 보였다.
같이 보시면 좋은 글
Horseshoe Bend
나바호 다리를 뒤로하고 다시 Page를 향해 30분쯤 달렸을까, 왼쪽으로 차량이 빼곡한 큰 주차장이 보였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호스슈벤드(Horseshoe Bend) 였다.
콜로라도강이 수백만 년에 걸쳐 굽이치며 만들어낸 협곡이 말굽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깊이만 300m가 넘는다고 한다.
📌 같이 보시면 좋은 글
강렬한 햇볕과 시차로 인한 피로가 겹쳤지만, 정비가 잘 된 길을 20분쯤 걸어 도착한 순간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규모였다. 별다른 안전장치나 관리 인력이 없어서, 아이를 동반한다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절벽 위에 서서 단단한 암석을 우아하게 깎아낸 강물의 힘을 바라보고 있자니, 2억 년 전에 만들어진 이 땅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아찔한 절벽 끝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에서 손에 잡힐 듯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