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위프 포인트에서 캐납을 거쳐 앤텔로프 캐년까지

Kanab으로 가는 길에 먼저 들른 곳은 와위프 포인트였다.

애리조나에 위치한 글렌 캐니언 국립 휴양지 안의 전망대인데, 이곳에서 레이크 파월과 그 주변의 붉은 암석 캐니언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었다. 

레이크 파월 호수 전경

레이크 파월 지역 전체를 통틀어도 전망이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는 곳답게, 에메랄드빛 호수와 거대한 사암 절벽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일출이나 일몰 시간엔 하늘과 호수, 캐니언이 온통 다채로운 색으로 물든다고 하는데, 맑은 날엔 멀리 유타주 지형까지 보인다고 한다.


오지 마을 캐납에서의 하룻밤

89번 도로를 한 시간쯤 달려 Quality Inn Kanab에 도착했다. 

체크인해준 직원은 멕시코 출신이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이 호텔에 한국인 투숙객이 워낙 많아서 컵라면이나 김치를 얻어먹은 적이 많다고 했다. 

매운 라면도 잘 먹는다며 실제로 자기가 갖고 있던 컵라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정받은 방은 이번에도 가장 높은 층, 가장 구석방이었다. 

전날 St. George에서도 똑같은 배정을 받았던 터라 조금 씁쓸했는데, 어쩌면 컵라면과 김치 냄새가 다른 투숙객에게 불편을 줄까 봐 배려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호텔 앞 마트에서 맥주 몇 병과 스낵을 사 왔다.

캐납은 유타 남서부 케인 카운티의 작은 마을로, 자이언과 브라이스 캐니언, 그랜드캐니언 노스 림, 파월 호수를 오가는 여행자들에게는 핵심적인 교통 요지다. 

1864년 인디언 방어를 위한 군사 요새로 시작됐고, 1870년엔 몰몬교 창시자 브리검 영이 이곳을 두 차례 방문해 마을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수십 년간 험한 지형 탓에 외부와 단절된 오지로 남아 있었는데, 1930년대부터 서부 영화 촬영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 세트장이 아직 남아있고, 100편이 넘는 고전 서부 영화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큰 스튜디오였던 셈이고, 지금 남아있는 오래된 건물 대부분이 그 시절 영화에 등장했던 것들이라고 한다.

파월 호수는 콜로라도강을 막아 만든 글렌 댐이 만들어낸 인공호수로, 물길 길이만 300km가 넘는 규모다. 

레이크 파월 호수에서 바라본 멋진 모습

사막 한복판에서 호화 요트가 떠다니는 걸 구경하는 것 자체가 이색적인 경험이었는데, 페이지 시내나 사막 곳곳에서 배를 자주 마주치는 이유가 바로 이 호수 때문이었다. 

호수 주변엔 리조트와 캠프장이 많아 여름이면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밤엔 아내와 맥주 한 잔씩 하며 남은 여정이 안전하고 편안하기를 서로 빌어줬다. 

다행히 이번 여행에서는 시차 적응 때문에 크게 고생하지 않고 밤마다 잠을 잘 자고 있어 다행이었다.


Page, 그랜드 서클의 중심지

다음 날 도착한 Page는 그랜드 서클 여행의 중심지답게 깔끔하게 정돈되고 잘 가꿔진 도시였다. 

오후 3시로 예약해둔 Antelope Slot Canyon Tours 투어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Pizza Hut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곳은 도우와 토핑을 직접 골라 주문하는 방식이었는데, 콜라와 환타인 줄 알고 시킨 음료가 알고 보니 무알콜 맥주 맛이 나는 루트비어였다. 

피자도 짠맛이 강해서 절반은 남기고 나와야 했다. 이 가게 역시 주인부터 종업원까지 모두 원주민이었다.

투어 사무실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원주민 가이드가 관광객들 앞에서 간단한 공연을 선보이며 기부를 요청했다. 

다들 군말 없이 상자에 돈을 넣었고 우리도 조금 보탰는데, 한때 대륙을 누비던 이들의 지금 처지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앤텔로프 캐년 역시 나바호족의 땅이라, 투어 운영도 이들의 독점 사업이었다. 

투어 비용과 별개로 나바호 자치구역 입장료도 따로 냈다.


빛이 만드는 마법, 앤텔로프 캐년

오후 3시, 인디언 투어 트럭에 올랐다. 


                     앤텔로프 캐년 가는길


트럭 한 대에 10명쯤 타고 다섯 대가 함께 달렸는데, 비닐 커버로 외부 먼지를 막아둔 형태였다. 

20분 남짓 포장·비포장도로를 번갈아 달려 협곡 입구에 도착했다.

앤텔로프 캐년(Antelope Canyon)은 사진작가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라고 한다. 

호주 출신 사진작가 피터 릭의 작품 "Phantom"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는데, 2014년 사진 역사상 최고가인 650만 달러에 팔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 크거나 길지 않은 이 슬롯 캐니언은 물과 바람이 오랜 세월 나바호 사암을 깎아내며 만든 지형이다. 

과거 이 일대에 잦았던 홍수가 처음엔 작은 바위틈을 파고들었고, 그 흐름이 반복되며 통로가 점점 넓고 깊어졌다. 

앤텔로프 캐년 내부 풍경

여기에 바람까지 더해지며 무른 사암의 침식을 가속시켰다고 한다. 

협곡은 Upper와 Lower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직선거리로 8km 가까이 떨어져 있어 서로 완전히 별개의 장소나 마찬가지였다.

가이드는 원주민 할머니였는데, 다소 사무적이고 무뚝뚝한 인상이었다. 

유럽 관광객들과 한 조가 되어 투어를 시작했는데, 새의 부리, 곰, 하트 같은 이름이 붙은 포인트마다 사진 찍기 좋은 위치를 짚어줬다. 

빛의 향연 앤텔로프 캐년

다만 다른 투어팀들과 동선이 자꾸 겹쳐서,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어림잡아도 10개 넘는 팀이 동시에 협곡 안을 돌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협곡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약속한 듯 탄성을 터뜨렸다. 

좁은 틈새로 스며든 빛이 붉은 바위벽에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장면은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앤텔로프 캐년과 어울어진 빛

같은 자리에서 찍어도 순간순간 색과 형태가 달라지니, 이곳에서는 누가 찍어도 웬만하면 근사한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빗물이 빚어낸 협곡,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사고

이 부드러운 웨이브 모양의 협곡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빗물이었다. 

사막 기후라 해도 콜로라도 고원엔 가끔 비가 내리는데, 그 물길이 골을 만들고 그 골이 시간이 지나며 계곡으로 커진다고 한다. 

앤텔로프 캐년 내부로 빛이 들어오는 광경

이 과정을 시공간적으로 무한히 확장하면 결국 그랜드캐년이 되는 셈이라, 앤텔로프 캐년은 흔히 그랜드캐년의 미니어처로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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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아름다운 협곡에는 잊지 말아야 할 비극도 있다. 

1997년 8월, 협곡을 걷던 관광객들이 갑작스러운 급류에 휩쓸려 10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당시 협곡 자체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상류 지역에 내린 폭우가 배수로 역할을 하는 이 협곡으로 순식간에 모여들며 거대한 급류가 됐다고 한다. 

앤텔로프 캐년 내부 풍경의 멋진 광경


8명의 시신은 하류의 파월 호수에서 수습됐지만, 2명은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철 소나기가 예보되면 투어 자체가 중단된다고 하니, 이 아름다운 협곡을 대할 땐 자연에 대한 존중과 경계심을 함께 가져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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