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스 국립공원의 델리키트 아치, 그리고 모압의 오프로드
간단히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Green River를 출발해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으로 향했다.
하필 Memorial Day 3일 연휴와 겹쳐서, 사람이 얼마나 몰릴지 내심 걱정이 됐다.
아치스 국립공원, 2천 개가 넘는 자연의 조각
40분쯤 달려 공원 입구에 다다랐는데, 도로 표지판이 좀 헷갈려서 순간 당황했다가 다행히 유턴해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Moab에 자리한 아치스는 유타주를 상징하는 국립공원이다.
309제곱km 면적 안에 자연적으로 생긴 천연 아치가 2천 개 넘게 흩어져 있다.
192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가 1971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됐고, 그중에서도 유타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Delicate Arch다.
아치 사이 구멍이 1m도 안 되는 작은 것부터, 높이 100m에 두께 5m에 달하는 Landscape Arch 같은 초대형까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구멍 지름이 1m 이상이어야 공식 목록에 오른다고 하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아치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지역에 유독 아치가 많은 이유는 물과 바람의 끈질긴 침식 작용 때문이라고 한다.
3억 년 전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와 두꺼운 사암층이 쌓였고, 물이 마르면서 드러난 소금 퇴적층과 사암이 1억 년 넘는 세월 비바람에 깎이며 지금의 모양이 됐다.
힘을 많이 받은 중앙부가 얇아지며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이 점점 넓어져 가장자리만 아치 모양으로 남은 것이라고 한다.
특히 바위 틈에 스민 물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침식을 가속시켰다고 한다.
Delicate Arch까지, 4.8km 트레킹
Utah의 상징 같은 이 아치는 직접 안 보면 후회할 것 같아서 서둘러 트레킹에 나섰다.
입구부터 차량이 줄지어 있는 걸 지나쳐 곧장 Wolfe Ranch 주차장으로 향했다.
연휴라 트레킹 인파가 많을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00대가 들어가는 큰 주차장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몇 바퀴를 돌고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왕복 약 2시간 코스, 생수와 모자를 챙기고 걷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여름이면 이른 아침에도 40도에 육박할 만큼 덥기로 악명이 높은데, 그늘이라곤 한 점도 없었다.
나무도 풀도 야생화도 있었지만 죄다 무릎 아래 높이라 그늘이 되어주진 못했다.
다행히 경사는 심하지 않았다.
출발은 주차장 옆의 낡은 오두막에서 시작한다.
1800년대 후반 남북전쟁 참전 군인 존이 아들과 함께 정착했던 집이라고 하는데,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초반 평지 구간은 여유롭게 걸을 만했고, 연휴라 트레커가 워낙 많아 길을 잃을 걱정은 전혀 없었다.
아이를 데려온 미국인 가족들도 많았는데, 아이들이 씩씩하게 잘 걷는 모습이 대견했다.
20분쯤 걸으니 평지와 가파른 사암 언덕이 번갈아 나타났다.
발밑의 선인장과 들꽃을 눈에 담으며 40분쯤 더 오르자, 모퉁이를 도는 순간 눈앞에 Delicate Arch가 나타났다.
숨 고를 새도 없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였다 — 너비 10m, 높이 14m, 마치 거대한 로봇의 하반신만 뚝 떼어놓은 듯한 위태로운 자태였다.
근처에 있던 독일 관광객들도 똑같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헐크 영화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한다.
사라져가는 아치들, Devils Garden
아무리 과학적인 설명을 들어도 눈앞의 광경은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 아치들이 영원하지는 않다고 한다.
1970년 이후로만 42개의 아치가 무너져 사라졌고, 세계에서 가장 가늘고 긴 93m짜리 Landscape Arch도 1990년대에 세 차례나 큰 돌덩이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도 미국 국립공원은 이런 자연 구조물에 인위적인 보호 조치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Delicate Arch도 언젠가 무너질 걸 알면서도, 보호장치 없이 자연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 주차장엔 이미 차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이어서 Devils Garden 쪽으로 이동해 Skyline Arch, Double O Arch 같은 비교적 가벼운 코스를 더 돌았다.
점심 무렵이 되자 더위가 절정에 달해서 더 이상의 트레킹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나오는 길엔 The Windows section과 Balanced Rock, Park Avenue, La Sal Mountains Viewpoint, Courthouse Towers, Tower of Babel까지 차례로 둘러봤다.
방문자 센터를 나설 즈음엔 아침보다 훨씬 긴 입장 대기줄이 생겨 있었다.
오프로드의 도시, 모압
허기와 더위에 지쳐 점심을 먹으러 모압 시내로 나왔다.
모압은 Canyonland와 아치스, 두 국립공원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시내를 다니는 차 대부분이 일반 승용차가 아니라 지프 같은 4륜 오프로드 차량이었고, 지붕이나 트렁크에 텐트와 캠핑 장비를 잔뜩 싣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952년 우라늄이 발견되며 벼락부자 마을이 됐다는 이곳은, 1970년대 우라늄 붐이 꺼지면서 관광 타운으로 재빠르게 변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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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자전거 트레일을 조성하고 국립공원을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지금은 유타를 대표하는 아웃도어 명소가 됐다.
실제로 거리를 다니는 차의 절반 이상이 자전거를 매달고 다녔고, 여행자 안내소에는 산악자전거 코스 지도도 따로 마련돼 있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발견한 중국식당에서 뷔페로 점심을 해결했다.
탕수육, 고기야채볶음, 에그롤 등 입맛에 잘 맞았는데, 아내를 위해 시킨 핫티가 나중에 계산서에 슬쩍 추가돼 있어 조금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당 17달러 정도였다. 메뉴판에 짜장, 짬뽕, 야끼만두가 한글로 쓰여 있는 걸 보니 한국인 손님이 꽤 많은 식당인 듯했다.
점심 후엔 대형 마트에 들러 음료와 과일, 라면 등을 챙겼다.
St. George 이후로 마트를 못 들러서 차 안 식량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는데, 한국 대형마트 못지않게 다양한 상품이 갖춰져 있었다.
35도가 넘는 더위였지만 건조한 기후 덕에 그늘에 들어가면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몬티첼로에서의 하룻밤
원래는 모압에서 묵을 계획이었지만, 성수기라 몇 달 전부터 예약을 시도했는데도 방을 구하지 못했다.
가격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결국 그랜드캐년 방향에 있는 몬티첼로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모압에서 80km, 차로 한 시간 거리라 큰 부담은 없었다.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한 몬티첼로는 인구 몇백 명 남짓한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191번 도로 옆에 주유소와 숙소 몇 개가 전부인 조용한 곳이었다.
체크인하는 동안에도 예약 없이 온 여행객들이 계속 빈방을 물었지만, 이미 모든 객실이 꽉 찬 상태였다.
매니저도, 방을 못 구한 운전자들도 다 같이 난감해 보였다.
Green River에서 출발해 아치스와 모압을 거쳐 몬티첼로까지, 유독 길게 느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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