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스 캐니언과 그리고 시닉 12번 도로의 절경
어젯밤 Kanab에서 묵고,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National Park) 이었다.
첨탑처럼 솟은 후두(Hoodoo)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물이 빚어낸 수만 개의 첨탑
브라이스 캐니언은 반원형 극장들이 모여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 안을 채운 수만 개의 뾰족한 첨탑이 모두 물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때 바닷속에서 토사가 쌓여 형성된 암석이 지반과 함께 솟아올랐고, 이후 빗물이 무른 부분을 다시 씻어내며 비교적 단단한 부분만 남아 지금의 첨탑들이 됐다는 설명이었다.
1년 중 200일 가까이 밤엔 얼고 낮엔 녹기를 반복하는 이 지역의 극단적인 기온차가 바위에 균열을 만들고, 결국 갈라지고 깨지며 후두를 빚어낸다고 한다.
반원형 극장의 가장자리는 50년마다 약 30cm씩 후퇴하고 있다니, 지질학적으로는 상당히 빠른 속도라고 한다.
해발 2,100m 안팎의 공원 하부엔 향나무가, 2,000m대 전망대 주변엔 소나무가, 3,000m 정상부엔 전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어 고도에 따라 식생도 뚜렷이 달라졌다.
1923년 준국립공원으로, 1928년엔 정식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곳은 남북으로 34km나 이어지는 긴 지형인데도 도로가 잘 포장돼 있어 13개 전망대를 둘러보기 어렵지 않았다.
Annual Pass와 여권을 함께 보여주고 입구를 통과하는데, 레인저의 순박한 미소가 여행의 설렘을 한층 더해줬다.
가장 높은 곳, 레인보우 포인트
이번엔 가장 먼 포인트부터 먼저 보고 나오는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제한속도 35~45마일 구간을 30분 넘게 달려 도착한 레인보우 포인트는 브라이스에서 가장 높은 2,778m 지점이었다.
눈앞의 풍경을 어떤 사진이나 글로도 절반조차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선 브라이스 전체 전망과 함께 동쪽의 층계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맨 위는 핑크색, 그 아래는 회색과 흰색, 다시 빨간색으로 이어진다.
지평선 너머 잘 보이지 않는 곳엔 초콜릿색 지층까지 있다고 한다.
인스피레이션 포인트와 선셋 포인트
입구 쪽으로 내려오며 들른 인스피레이션 포인트는 브라이스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 같은 지형이라 새벽엔 특히 환상적인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공원 이름의 유래가 된 몰몬교 지도자 브라이스가 이 계곡 아래 살았는데, 당시 방목하던 이들이 "소 잃어버리기 딱 좋은 곳"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정신을 쏙 빼놓는 경치였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선셋 포인트에서는 미로처럼 얽힌 후두와 지느러미 모양 바위들이 장관을 이뤘다.
전망대 아래 홀로 서 있는 "토르의 망치(Thor's Hammer)"는 공원에서 사진이 가장 많이 찍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다른 후두들과 뚝 떨어져 있어 유독 존재감이 컸다.
이 일대의 클라론 지층은 색감이 다채로워 브라이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위색을 자랑한다고 한다.
내추럴 브리지
Farview Point를 지나 고갯길을 내려가면 만나는 내추럴 브리지도 인상 깊었다.
아치보다는 다리에 가까운 형태인데, 바위 틈에 부식이 생기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며 점점 커진 모습이 후두 생성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지금도 부식이 계속되고 있어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나바호 트레일 트레킹
선셋 포인트에서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나바호 트레일(약 2.6km, 고도차 167m)은 공원 내 트레일 중 낙석 확률이 가장 높은 구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양옆 기둥과 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다.
2006년 5월엔 400~500톤 규모의 낙석 사고로 16개월이나 트레일이 폐쇄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 개방하는 이유는 "하이킹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원칙 때문이라고.
내려갈수록 스위치백이 이어지며 다시 올라갈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흙덩어리처럼 보이던 후두가 실은 수천만 년의 세월로 다져진 단단한 바위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선셋 포인트, 나바호 루프, 퀸스 가든을 거쳐 다시 선셋 포인트로 돌아오는 약 1시간 코스를 택했는데, 초반만 가파를 뿐 이후로는 노약자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수많은 후두의 실루엣이 유독 강렬하게 남았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 시닉 바이웨이 12번
브라이스 캐니언을 뒤로하고 오른 길은 유타 남부의 시닉 바이웨이 12(Scenic Byway 12)번이었다.
미국 정부가 최고의 경관 도로에만 부여하는 '올 아메리칸 로드' 칭호를 받은 곳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브라이스 인근 US-89번에서 시작해 캐피톨 리프 인근의 토리(Torrey)까지 약 198km에 걸쳐 이어지는 이 길은, 수억 년에 걸친 지질학적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볼더(Boulder), 에스칼란테(Escalante) 같은 작고 아름다운 마을들을 지나며 풍경에 계속 눈을 빼앗겼다.
헤드 오브 더 록스 오버룩
에스칼란테를 지나 한참을 달리다 만난 헤드 오브 더 록스 오버룩은 '밀리언 달러 로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12번 도로 중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었다.
약 1억 6천만 년 전 모래 지대가 오랜 세월을 거쳐 크림색과 붉은색 사암으로 변한 곳인데, 넓은 주차장에 서니 굴곡진 12번 도로가 이 사암 지대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대가 동쪽을 향해 있는데도 의외로 일몰이 특별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 노을에 물든 구름과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환상적이라고 한다.
12번 도로는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시작해 캐피톨 리프 서쪽 토리에서 24번 도로와 만나며 끝난다.
도로 위쪽엔 딕시 국유림, 아래쪽엔 그랜드 스테어케이스-에스칼란테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에스칼란테와 볼더 사이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실제로 달리는 내내 도로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 양옆이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 마치 파란 하늘 속을 관통하는 듯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사막 속 오아시스, 키바 커피하우스
지친 여행자에게 선물 같은 곳, 키바 커피하우스에 들렀다.
내리막 커브에 있어 자칫 입구를 놓치기 쉬운데, GPS를 켜두면 문제없이 찾을 수 있었다.
붉은 암석으로 꾸며진 간판에 반지하 형태로 자리한 이 작은 카페에서는 샌드위치, 샐러드, 커피를 판매했고, 직접 만든 커피잔이나 접시도 팔았는데 가격이 꽤 비쌌다.
점심으로 시킨 커피와 샌드위치는 양이 넉넉했고, 계곡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먹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참고로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하고, 겨울엔 눈으로 도로가 통제되면 아예 문을 닫는다고 한다.
다시 출발한 도로는 점점 고도가 높아지며 연둣빛 잎을 가진 나무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고도가 더 올라갈수록 나무의 색과 종류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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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을 하나 넘어서니 저 멀리 12번과 24번 도로가 만나는 조용한 시골 마을, 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이 마을에 들러 쉬어갈 계획이었지만, 일정에 쫓겨 그대로 24번 도로를 따라 그린 리버로 향했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캐피톨 리프까지 이어지는 이 12번 도로는, 왜 '올 아메리칸 로드'라 불리는지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구간이었다.
협곡과 바위산, 때로는 초원과 숲까지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에, 몇 번이나 나도 모르게 차를 세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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