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2일 여행기: 안개 낀 금문교부터 구불구불한 롬바르드 스트리트까지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열기를 뒤로하고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이틀 동안 이 도시를 걸어 다니며 담아온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1일차: 안개 속의 금문교, 그리고 소살리토에서 만난 지중해
여행 첫날 목적지는 금문교였다.
호텔 조식은 빵 몇 조각과 시리얼, 과일이 전부라 간단히 배를 채우고 오전 9시, 유니언 스퀘어에서 우버를 불렀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도 그랬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택시보다 우버가 훨씬 편했다 — 요금도 저렴하고 팁을 따로 챙길 필요도 없다.
금문교 공식 홈페이지를 미리 찾아보고 갔는데, 실제로 도착해서 본 풍경은 사진과는 완전히 달랐다.
안개에 뒤덮인 첫인상
30분 남짓, 요금 30달러 정도를 내고 금문교 앞에 내렸다.
그런데 정작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고, 바람도 매섭게 불어서 도무지 걸어 다닐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단 관광 안내소로 몸을 피했다.
기념품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우다 밖으로 나와 봤지만 안개는 여전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시며 기다려볼까 했는데, 이른 시간이라 문도 열지 않은 상태. 결국 추위를 못 이기고 기념품 가게에서 금문교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아내와 하나씩 사서 껴입었다.
안감에 기모가 있어 다행히 금세 따뜻해졌다.
그렇게 한 시간쯤 서성거렸을까, 거짓말처럼 해가 얼굴을 내밀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붉은 다리에 담긴 이야기
금문교라는 이름은 사실 다리 색깔과는 무관하다.
골드러시 시절 샌프란시스코를 부르던 별칭 "Golden Gate"에서 따온 것이다.
다리 자체는 짙은 주황빛에 가깝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 골든게이트 해협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페리뿐이었다.
강한 조류와 잦은 안개 탓에 "다리를 놓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당시 정설이었다고 한다.
그 불가능을 뒤집은 사람이 설계자 조셉이다.
반대파와 페리 사업자, 심지어 공학자들까지 설득해가며 설계를 몇 번이고 고쳤고, 대공황 한복판이던 1931년에 3,500만 달러 규모의 채권을 승인받아 1933년 착공, 1937년 5월 개통에 성공했다.
흥미로운 건, 대공황 시기였던 만큼 노조에 가입된 현지 노동자들을 우선 고용해서 지었다는 점이다.
불황 속에서도 4년 만에 이 거대한 다리를 완성해낸 셈이다.
1996년 미국토목학회가 선정한 '현대 토목건축물 7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린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리는 자전거와 도보로도 건널 수 있는데, 보통 Fisherman's Wharf에서 자전거를 빌려 건너간다고 한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꼭 자전거로 건너보고 싶다.
부자 동네 소살리토로
금문교를 실컷 구경한 뒤, 다시 우버를 불러 소살리토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 조금만 달리면 나오는 작은 마을인데,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소살리토는 1838년 영국인 윌리엄이 멕시코 관할 땅을 불하받아 세운 곳이다.
곡물과 목재를 거래하던 영국 무역상들이 정착하며 마을 전체에 영국풍 색채가 짙게 배었고, 이후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1937년 금문교가 놓이면서 배로만 오가던 이 마을은 자동차로도 갈 수 있게 됐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참전 용사들이 상처를 치유하러 찾아오면서 휴양지로서의 성격이 굳어졌다.
선착장에 내리면 넓고 잘 가꿔진 공원이 먼저 반긴다.
언덕 위로는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주택들이 늘어서 있고, 인구는 약 7,000명 남짓. 주민 대부분이 백인이고, 샌프란시스코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덕분에 예술가들이 유독 많이 모여 산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날씨였다.
방금까지 있던 샌프란시스코는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는데,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이곳은 맑고 화창했다.
급경사면에 오밀조밀 들어선 주택들, 구름에 살짝 걸친 산등성이 집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꽤 이국적이었다.
거리에는 고급 부티크와 근사한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어 눈이 즐거웠고, 바다에는 요트 수백 척이 정박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만 건너 시내 전경이 통째로 보이는 전망도 일품이었다.
돌아올 때는 페리를 탔다.
약 30분 정도 걸리는 뱃길인데, 오는 길에 멀리서 다시 마주친 금문교가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옅은 빗방울이 흩날렸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운치 있었다.
2일차: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언덕,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구불구불한 길
이튿날은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걸어볼 차례였다.
목적지는 세 곳 — 케이블카, 피셔먼스 워프,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롬바르드 스트리트.
케이블카 승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줄의 길이에 살짝 당황했다.
못해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인파였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까지 와서 이 상징적인 전차를 안 타보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냥 줄을 섰다.
도로 위에 깔린 레일 위로 케이블카와 일반 승용차가 나란히 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언덕 경사가 생각보다 훨씬 가팔라서, 막상 올라탔을 땐 살짝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이 케이블카는 1873년, 영국 출신 이민자 앤드류의 제안으로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150년 넘게 유니언 스퀘어, 차이나타운, 피셔먼스 워프 같은 주요 명소를 오가며 시민들의 발이 되어준 셈이다.
정류장마다 꼬박꼬박 서면서 약 30분 정도를 달려 피셔먼스 워프 근처에 내렸다.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열기에 시달리다 온 터라, 이곳의 선선한 바닷바람이 유독 반가웠다.
부두에서 만난 바다사자와 클램차우더
피셔먼스 워프는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부두로, 항구와 해산물 식당이 즐비하다.
앨커트래즈 섬으로 가는 크루즈 선착장도 이 근처에 있어서 늘 사람으로 붐빈다.
이곳의 얼굴 같은 곳은 1978년 문을 연 Pier 39다.
2층짜리 목조 건물 안에 100개가 넘는 상점과 레스토랑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휴일이면 거리 공연도 열린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부두 위로 올라와 낮잠을 자는 바다사자 떼였다 — 관광객들 코앞에서 태연히 뒹구는 모습이 묘하게 웃겼다.
1층 광장은 온통 꽃으로 장식돼 있고, 맞은편 기라델리 스퀘어 쪽에는 배 모양의 해양박물관도 있다.
이리저리 구경하다 저녁 시간이 다 돼서, 미리 찜해둔 Boudin Bakery로 향했다.
간판이 워낙 커서 찾는 데 헤맬 일은 없었다.
이 집의 명물은 클램 차우더.
커다란 빵의 윗부분을 잘라내 그릇처럼 만든 다음, 그 안에 짭짤하고 진한 조개 수프를 부어주는 방식이다.
짠맛이 좀 강하긴 했지만, 조갯살이 신선해서 감칠맛이 확실했다.
곁들인 샐러드와 빵도 무난했고,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개방형 구조라 위생 면에서도 믿음이 갔다.
다만 관광객이 워낙 많아 자리는 늘 꽉 차 있는 편이다.
꽃길로 유명한 롬바르드 스트리트
배도 채웠으니 다시 케이블카 종점으로 돌아가 유니언 스퀘어를 거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탔다.
목적지는 롬바르드 스트리트, 피셔먼스 워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Hyde St.와 Leavenworth St. 사이 구간이 5미터 간격으로 S자를 그리며 급하게 꺾이는데, 그 사이사이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해놓았다.
1922년, 약 27도에 달하는 급경사를 어떻게든 차량이 다닐 수 있게 만들려고 지금의 구불구불한 형태로 설계했다고 한다.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1분도 안 되지만, 꽃과 거리, 하늘이 만들어내는 조합이 사진 그대로였다.
차로 이 길을 내려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항상 정체가 있고,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다.
별다른 기술이나 큰 비용 없이 원래 지형을 살짝 비틀었을 뿐인데, 연간 1,300만 명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는 게 신기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도 좋았다.
멀리 고급 주택가가 하얗게 빛나고, 발아래로는 화단의 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 같이 보시면 좋은 글
참고로 봄에는 꽃 색이 가장 화사하고,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시들해진다고 하니, 방문 시기를 고른다면 봄이 낫지 싶다.
겨울에는 아예 꽃을 정리해버려서 이 풍경 자체를 보기 어렵다고 한다.
늦은 시간까지 걸어 다니느라 지쳐서,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고 호텔로 복귀했다.
호텔 근처에서 스시롤과 연어 요리를 포장해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닷가 도시라 그런지 이런 메뉴가 유독 흔했다.
여행 팁
- 금문교는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라, 오전 일찍 도착했다면 억지로 서두르지 말고 근처에서 한두 시간 여유를 갖는 걸 추천한다. 날이 개면 훨씬 선명한 풍경을 볼 수 있다.
- 자전거로 다리를 건너고 싶다면 Fisherman's Wharf 인근 대여소를 이용하면 된다.
- 소살리토는 페리로도, 우버로도 쉽게 오갈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갈 때와 올 때 교통수단을 다르게 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 롬바르드 스트리트는 봄에 방문해야 꽃이 가장 화사하다. 겨울에는 꽃 자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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