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버댐과 파월 호수, 그리고 3,000km 그랜드 서클을 돌아보며
그랜드 서클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후버댐이었다.
차 안에서 대충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다시 출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이 댐을 마지막으로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를 거쳐 다시 네바다로 돌아오는 5일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셈이었다.
사막 위에 세워진 거대한 벽
규정 속도 55마일을 다들 칼같이 지키며 달리고 있었다.
군데군데 경찰이 단속 중이었고, 실제로 걸린 차량도 눈에 띄었다.
표지판을 따라 빠져나가자 곧 후버댐(Hoover Dam) 입구가 나왔다.
보안 검색이 있긴 했지만 다소 형식적으로 느껴졌다.
주차를 하고 밖으로 나서니 사막의 열기가 그대로 얼굴을 덮쳤다.
온도계는 38도를 가리켰는데, 햇볕이 너무 강해 숨쉬기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늘로 피신하고서야 조금 살 만해졌다.
그래서인지 다들 오래 머물기보다는 짧고 굵게 둘러보고 이동하는 분위기였다.
후버댐은 네바다와 애리조나 경계, 콜로라도강 블랙 캐니언에 자리한 높이 221m, 길이 411m의 중력식 아치댐이다.
1931년 착공해 계획보다 2년 앞당긴 1935년 완공됐고, 약 21,000명이 투입돼 112명 내외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여기 쓰인 콘크리트 양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차선 도로를 깔 수 있는 정도라니, 규모가 짐작이 갔다.
1981년 국립역사관광지, 1985년 국립사적지로 지정됐고, 견고함과 상징성 때문에 피라미드와 함께 인류가 사라져도 10만 년 넘게 남을 구조물로 꼽힌다는 얘기도 있다.
가장 신기했던 건 댐 위를 걸으며 네바다와 애리조나, 두 주(州)를 오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두 주의 시차가 달라서, 몇 걸음 걷는 사이에 시계가 한 시간씩 왔다 갔다 하는 게 묘하게 재밌었다.
댐 양옆에는 시계탑이 하나씩 서 있는데 왼쪽은 애리조나, 오른쪽은 네바다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댐이 만든 인공호수 Lake Mead는 길이가 185km, 호수 둘레만 885km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부산 거리(416km)를 떠올려보면 그 크기가 대략 그려진다.
콜로라도강은 로키산맥에서 캘리포니아만까지 2,253km를 흐르며 미국 서부의 메마른 땅에 물을 대주는 역할을 한다는데,
실제로 마주한 풍경은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광활했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배경으로도 쓰였다는데, 200m가 넘는 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아찔했다.
이 댐이 바로 사막 위 도시 라스베가스에 전기를 공급하는 곳이라고 하니, 새삼 신기했다.
사막 속 바다, 파월 호수
후버댐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곳은 파월 호수였다.
애리조나와 유타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인공호수는 1963년 완공된 글렌캐년 댐이 만들어낸 것으로, 길이만 약 300km에 달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인공호수라고 한다.
호수에 물을 완전히 채우는 데만 17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미국 서부에서는 여름철 수상 레저의 성지로 통한다는데, 보트 투어와 하우스보트, 수상스키, 낚시, 수영까지 온갖 액티비티가 다 가능했다.
붉은 사암 절벽과 푸른 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이었고, 근처의 앤텔로프 캐년이나 홀슈 밴드와 묶어서 다니기도 좋은 위치였다.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지인 듯했다.
자동차에 보트를 매달고 온 사람들이 신나게 물살을 가르고, 수많은 배가 물결에 흔들리며 정박해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 호수 전체를 내려다보니 끝이 안 보일 만큼 넓었다.
이런 댐이 없었다면 라스베가스 같은 인공 도시도 존재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000km, 5일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를 거쳐 다시 네바다까지 이어진 그랜드 서클 여정은 하염없이 황야를 달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몇 시간을 달려도 창밖 풍경이 크게 바뀌지 않아 지치기도 했지만, 그 끝엔 늘 예상 못 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황무지 한복판에 불쑥 솟은 바위산과 협곡들은 마치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협곡이 만들어진 과학적 설명을 들어도, 머리로는 다 이해되지 않는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어느 절벽 앞에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건넨 말이 오래 남았다 — 대자연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을 위로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정말 자연이 건네는 위로인지, 아니면 내 안에서 듣고 싶었던 말이 되돌아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그 메마른 황야를 달리던 순간을 종종 꺼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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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과 식사, 그리고 몇 가지 현실적인 이야기
운전은 주로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혼자 도맡았다.
구경하고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도 하루 6~8시간, 많을 땐 350~400마일 넘게 달렸다.
원래 장거리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라 부담은 크지 않았고, 도로가 뻥 뚫려 있어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편했다.
다만 여행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얼굴이 새카맣게 타 있었고, 긴장이 풀리면서인지 2주가량 몸살을 앓았다.
식사는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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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St. George의 월마트에서 커피포트, 컵라면, 생수, 과일 등을 미리 사둔 게 큰 도움이 됐다.
묵었던 모텔 대부분에 전자레인지가 있어서 햇반과 컵라면을 먹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St. George와 Kanab의 Quality Inn 조식은 스크램블 에그, 빵, 감자, 각종 수프까지 꽤 알찼는데, Green River를 지나 라스베가스에 가까워질수록 조식의 질은 조금씩 아쉬워졌다.
점심은 버거킹, 맥도날드,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로 때우는 날이 많았고, 모압에서 들른 중국식당 뷔페가 그간의 느끼함을 씻어내는 데 한몫했다.
저녁엔 햇반에 김치, 컵라면, 깻잎, 볶음고추장을 곁들여 먹었는데, 이게 은근히 피로를 풀어주는 한 끼였다.
미국 도로는 표지판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길을 헤맬 일이 거의 없었다.
Green River에서 Arches로 갈 때 교통 통제로 입구가 임시로 바뀌어 잠깐 지도를 확인한 것 말고는 딱히 길을 잃은 기억이 없다.
이렇게 5일, 3,000km가 넘는 그랜드 서클 여정을 마쳤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여행 전체가 하나의 큰 위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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