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먼트 밸리의 붉은 대지, 그리고 추억의 66번 도로

그랜드 서클 여정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두 곳을 하나로 묶어본다. 

나바호족의 성지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Park)와, 미국인들의 향수가 서린 옛 66번 국도 이야기다.

멀리선 본 모뉴먼트 밸리의 아름다움


모뉴먼트 밸리, 자연이 빚은 조각품

해발 2,000m의 광활한 황무지 위로 높이 130~330m에 달하는 기묘한 바위기둥들이 서 있는 곳, 모뉴먼트 밸리에 들어섰다. 

뾰족하게 솟은 산은 스파이어(Spire), 테이블처럼 넓은 바위는 메사(Mesa), 끝이 뾰족한 바위는 뷰트(Butte)라고 부른다는데, 

모뉴먼트 밸리의 뷰트


이 모든 형태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1억 6천만 년 전 이곳은 사암으로 이뤄진 고원이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며 무른 부분은 흙이 되고, 단단한 부분만 남아 지금의 기둥 모양이 됐다는 설명을 들으니 그 시간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모뉴먼트 밸리의 도로

커브를 돌아 나오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계곡을 도는 드라이브 코스는 약 17마일,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길이다. 

SUV를 권장한다고 했지만 일반 렌터카로 천천히 돌았는데, 정해진 도로만 다녀도 웅장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모뉴먼트 밸리의 세자매 바위


벙어리장갑 모양의 West Mitten Butte, East Mitten Butte, Merrick Butte, 이 세 개의 거대한 바위가 삼각형을 이루며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요새 같았다.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코끼리 모양의 Elephant Butte, 세 자매가 손을 맞잡은 듯한 Three Sisters, 인디언 종교의식에 쓰이는 토템 폴, 그리고 존 포드 감독의 이름을 딴 존 포드 포인트까지 이어졌다. 

여러 Monument가 한눈에 들어오는 Artist Point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나바호족의 아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모뉴먼트 밸리의 기념비


1860년대 미군의 토벌 작전으로 많은 원주민이 희생됐고, 살아남은 약 1만 명은 560여km 떨어진 뉴멕시코의 포로수용소까지 끌려갔다고 한다. 

이후 협상 과정에서 나바호족은 조상들의 얼이 깃든 이곳, 모뉴먼트 밸리를 선택했고 그것이 지금의 나바호 자치정부가 자리 잡은 계기가 됐다.

지금은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이라는 정식 이름으로, 약 18만 명의 나바호 인디언이 살아가는 보호구역이다. 

모뉴먼트 밸리의 멋진 광경과 모습


1250년쯤부터 대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의 방식이 아직도 일부 남아있어서, 계곡 곳곳에서 양과 말을 기르는 모습, 돔 형태의 전통 흙집도 볼 수 있었다. 

방문자 센터 주변에서는 나바호 주민들이 직접 만든 터키석과 은 세공품, 목걸이와 반지 등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도 관심을 보이며 하나둘 구입하는 모습이었다.

참고로 나바호 자치지구에 들어서면 시간이 한 시간 빨라지는 재미있는 현상도 있다. 

모뉴먼트 밸리의 멋진 풍경


애리조나는 서머타임을 시행하지 않아 여름철엔 캘리포니아와 시차가 없어지는데, 나바호 자치지구만은 서머타임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약 1시간 30분의 루프 투어를 마치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그랜드캐년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추억의 66번 도로를 달리다

또 다른 날, 그랜드캐년에서 5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Williams였다. 

그랜드캐년 관광의 전초기지 같은 작은 도시로, 대부분의 여행객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캐년으로 향한다고 한다.

I-40 하이웨이를 타고 Kingman 방향으로 달리다, 역사적인 Route 66의 중심지 Seligman에 들렀다.

이곳은 서부개척시대의 건물과 생활상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다. 

66번 국도가 주간고속도로에 밀려 잊힐 위기에 처했을 때, 이 길을 "히스토릭 루트 66"으로 되살리자는 운동이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고 한다.

시카고에서 산타모니카까지 총 3,945km, "미국의 어머니 길(Mother Road)"이라 불리는 이 도로는 1926년 개통돼 1985년 공식 폐쇄되기까지 수많은 미국인의 꿈과 애환을 실어 날랐다. 

강과 평야, 사막과 협곡을 두루 지나는 2,455마일의 여정이었는데, 노동자들의 고된 애환이 담겼다 하여 한때 "Bloody 66"이라는 다소 살벌한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후 주간고속도로에 자리를 내주며 표지판에서마저 사라질 뻔했지만, 1999년 미국 의회가 이 도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재건을 결정했다고 한다.

Seligman 거리에는 서부시대풍 술집과 이발소, 오래된 클래식카와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버스를 대절해 와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국적을 불문하고 이 낡은 향수에 끌리는 모양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지평선 위 도로를 따라 약 2시간을 달려 Kingman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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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man의 In-N-Out Burger

Kingman에서는 마침 점심때가 되어 미국 서부의 명물, In-N-Out Burger를 맛보기로 했다. 

계속 한적한 하이웨이만 달려오다 시내로 들어서니 갑자기 차와 신호가 복잡해진 느낌이었다. 

매장 앞엔 사람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 서울 명동의 인기 버거집 못지않았다.

더블더블 버거와 감자칩, 콜라를 시켜 차 안에서 먹기로 했다. 

생감자를 직접 튀긴다는 감자튀김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는데, 아내는 오히려 마음에 든다고 했다. 

1948년 캘리포니아 볼드윈 파크에서 캘리포니아 최초의 드라이브스루로 시작한 In-N-Out은, 

프랜차이즈를 내주지 않고 3대째 직영으로만 운영하며 냉동하지 않은 신선한 재료를 고집해온다는 게 인기 비결이라고 한다. 

감자도 그 자리에서 바로 썰어 튀긴다. 

2025년 기준 미국 서부와 중남부에 4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과 조용한 도로만 달려오던 우리에게, 이곳의 북적임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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